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기획/특집
남한산성은 백제 근초고왕시절 왕궁지당시 신라변방 군사지역 등은 ‘역사적 사실 미약’

남한산성 발굴시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발표 잘못

건물 크기, 기와 크기와 무게, 백제시대 격자무늬 와편 발견

 

 

2007년 당시 남한산성 대형건물지(행궁지) 8차 발굴조사를 하였으나 역사적인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를 못하고 묻히고 말았다.(16일자 관련기사)

이는 당시 발굴조사를 담당했던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팀들의 주장에 대해 어느 누구하나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이날 남한산성 행궁지 8차 발굴조사결과, 발굴단은 행궁지 아래에서 발굴한 대형건물지가 통일신라시대의 건물지라고 발표를 했다. 그러나 이는 오판임이 드러났다.

이들이 주장하는 신라시대 주장성을 쌓았다는 시기는 문무왕 12년(서기672년)이며, 백제의 근초고왕이 한산에 도읍을 정한 시기는 근초고왕26년(서기371년)이다.

위의 내용에서 발굴단은 672년에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할 때의 건물지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무려 300년 차이라는 엄청난 오류를 범하고 있음이 다음과 같이 밝혀지고 있다.

1. 우선 이곳에서 발견된 건물지는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유래를 발견 할 수 없는 기와의 크기이다.

일반기와의 무게는 약 4키로그램인 반면 이곳에서 발견된 기와는 약 19키로그램이다. 크기나 무게면에서 지금까지 통일신라시대의 신라지역이나 그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된 예가 없음에도 통일신라라고 단정하고 있다.

2. 통일신라시대(7세기말)는 이미 기와의 크기가 정형화 되어 지금의 크기와 유사하다. 이곳에서 발견된 기와는 일반적인 기와가 아니라 특수한 건물로서 신라 변방의 군사지역에서 이러한 거대한 건물을 축조하였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건물과 기와가 발견되어야 한다.

신라왕도에도 발견된 예가 없으나 하남시 백제왕도에서도 이러한 와편이 여러곳에서 발견되었다.

3. 기와를 소성한 재질에서 5세기가 되면 지금의 기와처럼 단단한 검은색의 기와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는데 남한산성에서 출토된 기와에는 물을 흡수하는 소성도가 낮은 연질기와이다. 통일신라시대의 기와는 단단한 경질(硬質)의 기와야 한다.

이는 백제 근초고왕때 한산으로 도읍을 정한 시대와 동일한 기와 유물이 많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거대한 건물지를 축조하면서 물을 흡수하는 기술과 소성도가 낮은 기와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 만큼 시대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또 이곳에서는 백제시대 이전의 기와와 유물이 대부분이며 백제시대 토기도 함께 발견되었다.

4. 하남시에서 백제 왕도가 발견됨으로서 그 당시 산성인 남한산성에도 백제와 관련된 건물지가 발견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고대왕도는 산성과 도성(남한산성과 하남시 이성산성)이 하나의 셋트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철칙이다.

남한산성을 백제와 관련하여 생각하지 않은 것은 많은 문제점이 있는 발굴 이었다.

5. 남한산성의 성벽중에 남한산 일대에서 나지 않는 화강암으로 쌓은 성벽은 하남 이성산성과 함께 한강건너에서 돌을 운반하여 쌓은 성으로 백제 왕도 이외에는 변방세력이 장구한 세월동안 쌓을 수 없고, 신라 왕도에도 이렇게 정성들인 고급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백제시대 남한산성에 성돌을 운반한 운하(運河) 유적이 하남시 덕풍천(한강에서 고골 통해 남한산성 북문)에서 발견되어 남한산성에 성돌 운반 경로를 알 수 있다.

6. 발굴 보고서에 천주(天主)라는 명문이 기와에서 발견되었고, 천주는 곧 천왕(天王)의 대명사를 의미하므로 왕궁지임을 입증하는 명문이다. 당시 이러한 명문은 아곳에서나 사용 할 수 있는 글자가 아니다.

7. 조선시대 남한산성에서 백제시조를 모시는 숭렬전을 건립하였다는 것은 그때 까지만 하여도 백제왕궁지 유적을 유추할 수 있었기에 남한산성에 백제와 관련된 사당을 건립하였다.

8. 목탑(木塔)은 삼국초기의 탑이며 그 다음은 전탑(塼塔)과 석탑(石塔)이다. 하남시에서 황룡사 목탑보다 더 큰 규모의 목탑(木塔)이 2기나 발굴되어도 국민으로 하여금 알 수 없도록 은폐하였다. 신라의 황룡사 목탑도 신라에서 건립할 수 없어 백제의 아비지가 건립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도 무시하였다.

하남시에서 거대한 고대도시 유적이 발견되어도 이성산성을 신라의 성이나 고구려라고 하면서 백제왕도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

하남시에서 백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남한산성 발굴에 관여한 만큼 결과는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9. 남한산성 행궁지에서 백제 유물이 많이 출토 되었다면, 보고서에 이를 거론해야 함에도 의도적으로 거론을 하지 않았다.

한상준  gjilbo2001@hanmail.net

<저작권자 © 파인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상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