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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용봉문화한종섭 (사) 백제문화 연구회 회장, 역사문화 신지식인

• 독도의 용과 속초의 봉황(울산바위)으로 연결된 용봉 신성라인

6년전 울산바위의 모양이 봉황과 같기에 조사한 결과 인위로 조성한 흔적이 많아 봉황유적임을 알게 되었다. 울산바위는 세계 최대의 유적이기에 오랫동안 심도 있게 조사 연구한 결과 독도의 용과 동해의 용봉문화재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실마리는 하남시 백제왕도의 신전 유적이 있는 이성산성에는 9각지(태양) 옆에는 8각지(금성)가 함께하고 있으며, 이러한 배치는 용(금성)과 봉황(태양)이 항상 함께 하는 용봉사상에 있다.

독도가 신성라인속의 거대한 용이라면 이와 함께하는 거대한 봉황도 일정거리에 있어야 한다.

예로서 태양제국 백제의 왕도와 머나먼 일본의 나라현과 중국의 요서지역 3곳을 연결하면 동서 일직선이다.

거리가 멀어 이해하기 어렵지만 제정일치사회는 천문제도에 의하여 금성의 제국을 세운 것으로 일본의 천황들이 금성의 무덤(일명 : 전방후원분)에 묻혀 있어 그 당시의 사상을 알 수 있다.

용봉사상이 지배 하였던 그 당시로서는 용과 봉황은 항상 함께하는 금성과 태양과 같이 서로 먼 거리를 두고 연결 되어 있다.

용과 봉황은 항상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금성과 태양이 함께 운행하는 천문에서 용봉사상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우산국 왕도를 찾아내고 육지와의 연결될 가능성을 조사해 본 결과 속초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울산바위 봉황은 독도의 좌청룡 과 동서로 연결되고 있다.

우산국에서 독도를 기준으로 왕도 위치를 조성할 정도라면 이미 울릉도와 독도는 우산국 이전부터 육지와 세력권으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선사시대부터 육지와 연결된 것을 입증하는 것은 사신사상에 의하여 배치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유적이 울릉도 지역에 산재되어 있다. 울산 바위를 거대한 봉황으로 장구한 세월 동안, 조성하게 된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특히 섬은 물과 바람만이 접근이 가능하므로 물의 용신(龍神)과 봉황의 풍신(風神)으로 용봉사상이 지배하는 곳이 섬과 동해이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에서 8천년전 통나무배가 출토되어 바다 진출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선 시기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고대인들이 자연 또는 인위로 조성한 각종 형상을 많이 보아 왔으나 독도처럼 용을 잘 표현한 형상은 드물었다.

머리, 귀, 목, 꼬리까지 물속에 있는 용의 형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울릉도를 고대인들은 어떤 사상으로 보게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 월신(月神) 사상에서 본 울릉도

『삼국지』동옥저 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옥저 노인이 말하기를 “우리나라 사람이 어느 날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가 풍랑을 만나 수십일을 바람 부는 대로 표류, 동쪽으로 흘러가서 한 섬에 도착하였다. 그 섬 위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말을 서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의 습속은 해마다 7월 달이면 동녀(童女)를 구하여 바다에 집어넣는다. 이어 말하기를 ” “바다 가운데에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는 순전히 여자만 있고 남자는 없다.”

우리나라 동쪽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큰 섬은 유일하게 울릉도밖에 없다. 처녀를 바다에 제물로 바치는 것은 심청전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바다에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바다는 달에 의하여 밀물과 썰물 조수간만의 차이가 일어나고 여자도 달마다 월경(月經)을 하므로 달은 물의 신(神)으로 제물로는 동녀를 바쳤다는 것이다.

여자만 있고 남자는 없다는 말은 여자들이 전면에서 통치하였다는 것이며 특히 섬에는 남자가 귀한 것은 어업에 종사하면서 많이 죽게 되는 이유도 있다. (얼마 전만 하여도 여자들은 배를 탈수 없는 금기 사항이였다.) 남자가 없다는 것은 여자보다 그 만큼 많지 않다는 것으로 삼다도 제주도와 같은 섬의 특성에서 나온 말이다.

백제의 저수지 위에는 12각 달의 신전을 건립한 것이 하남의 이성산성, 순천 검단산성, 공주의 공산성으로 모두 저수지 위에 건립되었다.(위례성 백제사 2권 266쪽 참조)

12각 건물은 물을 관장하는 월신(月神)의 신전으로 밝혀지면서 달과 물은 관련됨을 알 수 있다.

물로 에워싸인 울릉도의 대표적인 숭배의 대상은 월신으로, 동녀의 제물과 여자들이 제 의식 무속의 주체가 되면서 외부적으로 여자들만 사는 섬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 울릉도의 제당과 월신 숭배

울릉도의 제당을 조사한 『울릉군지』에 의하면 총 36곳으로 3월3일에 제를 올리는 곳이 17곳 1월 15일에 제를 올리는 것이 17곳 3월 1일이 2곳이다.

3월 3일은 해신제(海神祭)가 주를 이루고 1월 15일은 동제와 산신제가 많다.

동제와 해신제를 구분한 사동리에서는 동제는 1월15일이며 해신제는 3월3일이다.

해신제의 3월3일은 삼신사상에 의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에게 비는 것이며, 1월 15일은 땅과 관련된 월신의 날짜이다.

정월 대보름의 행사 중에 다리 밟기의 답교(踏橋)놀이가 있으며 그 뜻은 1년 동안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도록 액막이 세시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동국세시기』) 인체 중에 땅과 관련된 다리는 하늘의 달로 인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땅을 말할 때 음달 양달이라는 어원은 땅이 달과 같다는 것이다.

또한 정월 대보름에 달집태우기 행사에서 달과 관련된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땅이 달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 것은 달에 의하여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므로 지구의 70%가 물로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해 숭배의 대상을 요약하면 속초의 봉황울산바위(태양) 〜 울릉도(달) 〜 독도의 우산(금성)과 동서방향으로 해가는 길로 줄지어 있어, 해 달 금성이 줄이어 있는 천문 환역(桓易)사상과 같다.

울산바위를 봉황으로 가공하여 신성라인을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우산국 좌청룡(左靑龍) 독도와 울산바위 봉황은 동해의 용봉

봉황은 높은 산위에 있으며 용은 물속에 산다는 뜻에서 울산바위 봉황은 설악산 높은 산에 위치하고 독도의 용은 물속에 있어 위치적으로 부합된다.

또한 울산바위 봉황이 바라보고 있는 머리의 방향이 울릉도와 우산(독도)을 향하고 있다.

동해안은 극동지역으로 태양숭배의 성지로서 그 어느 곳보다 떠오르는 태양을 숭배하는 신앙심과 활동이 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지금도 해돋이 명소가 되고 있다.

일본에 고인돌 무덤이 빈약한 것과 달리 한반도에 가까운 울릉도에 고인돌 무덤이 산재되어 있어 일찍이 한국인들이 터전을 잡고 살았던 곳이다. 우산국 왕도 역시 한반도와 가깝고 일본과는 반대방향이다.

울산바위 봉황의 머리 부분은 인공으로 가공한 흔적이 많으며 봉황임을 입증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울산바위에서 울릉도와 독도로 이어지는 곳에는 ‘정암’이라는 지명이 다른 지역의 왕도와 동일하게 남아있다.

예로서 하남시 한성백제왕도의 동쪽과 경남 의령군 임례국 왕도의 동쪽에도 ‘정암’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울산바위 동쪽 바닷가에도 ‘정암’ 지명이 남아 있고 울산바위 남쪽에는 백담사의 부속암자 ‘봉정암’이라는 사찰이름의 ‘정암’이다.

봉정암의 건립유래에서도 울산바위가 봉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자장율사(7세기경)가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안치하려고 암자의 위치를 물색하던 중에 봉황이 인도하여 이곳에 암자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 율사가 울산바위 봉황 남쪽 신성라인에 해당되는 성스러운 위치 봉황의 길 ‘정암’에 암자를 건립한 것이 봉정암이다.

초기 봉황은 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울산바위 아래를 학사평이라 하는 지명도 울산바위 봉황에서 지어진 지명이다.

봉정암의 위치는 설악산 대청봉에서 서북쪽 약1.8km에 위치에 있고 울산바위(873m)에서 대청봉(1707m)은 가시거리(약8.7km)로서 목측으로도 위치를 정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것을 입증하는 것은 울산바위 계조암도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봉정암 창건과 동일함을 알 수 있다.

그 무렵 원효대사(617~686)도 울산바위 계조암에서 수도하였고 봉정암을 중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기준이 되면서 신성함을 뜻하는 ‘정암’에 대한 뜻과 유사한 기록은

호암사에는 정사암(政事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나라에서 장차 제상 감을 의논 할 때 뽑힌 사람 3〜4명의 이름을 쓰고 상자에 넣고 봉해서 바위위에 두었다가 얼마 후에 열어 보아 이름위에 인(印)이 찍힌 자리가 있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있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2 남부여 전 백제와 북부여)

우산국시대는 물론 그 이전 이후에도 동해의 수호신으로 독도를 동해의 용으로 숭배하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봉황 울산바위를 6년전에 처음 찾아내고 왜 이곳에 세계 최대의 유적을 장기간 조성하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되었고 단순한 유적이 아닌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예측하게 되었다.

거대한 봉황을 인위적으로 조성하였다는 것은 짝이 되는 거대한 용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항상 태양을 따라 운행하는 금성과 같이 울산바위 봉황은 동해의 용신 독도와 짝을 이루고 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울산(鬱山)바위와 울릉도(鬱陵島) 우산(于山)은 일직선의 신성라인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에 인위적인 것은 울산바위 봉황과 봉정암 암자 이다. 지금은 방향이 약 16도 정도 기울어져 있지만 우산국 시대는 동서 방향 이였다.

우산국 왕궁의 산성인 초봉에 대봉굴이라는 굴의 명칭과 그 옆에는 보루산이 있어 산성이 있는 봉황의 산 이름임을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부인 할 수 없는 것은 독도는 우산국의 좌청룡은 물론 그 보다 앞선 속초의 울산바위 봉황과 용봉사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독도는 수천 년 전 선사시대 이미 한반도 좌청룡의 영토임을 근원적으로 지정하였던 곳이다.

울산바위와 독도와 관련이 있으므로 <삼국사기>의 기록과 대조해 본다면 예국이 3세기 초에 멸망하여 그 잔류세력이 울릉도로 천도하여 6세기 초에 이사부에 멸망 할 때 까지 약 300년간 도읍을 정한 것으로 보여 진다.

속초에서 울산바위를 관광하고 울릉도의 우산국 유적과 독도를 함께 관광 할 수 있는 여객선 선착장이 앞으로 속초에 개설 되어야 할 전망이다.

동해의 용봉문화 태마 관광객 유치로 속초가 동해의 역사 문화 관광 코스로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 되어야 곳이다.

세계 최대의 울산바위 봉황과 울릉도와 연결된 독도가 우산국의 좌청룡으로 모두 동해의 용봉 문화재 이다.

수천 년전 고대로부터 증거가 있는 한나라의 거대한 문화재라면 이를 두고 한일 간 서로 분쟁을 알 수 없게 된다.

남의 나라 문화재는 가져간 것도 되돌려 주어야 하므로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를 문제 삼을 수 는 더욱 없고 논하는 것조차 어렵다.

 

한종섭  gjilbo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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