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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라는 이름

유년기 어린 시절 내 일과 중 하나는, 어스름 땅거미가 지면 동구 밖으로 아버지를 배웅 나가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 시간이 기다려졌던 것은 인자하신 아버지가 좋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다른 것에 있었다.

하루 종일 노동일을 마치시고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 아버지의 실루엣이 보일 때 쯤 이면, 나는 한 달음에 달려가 아버지 품에 안기곤 했다. 그리고는 익숙한 몸짓으로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올라타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서 나는 냄새가 싫지 않았고 아버지의 그 넓은 허리춤을 꼭 잡고 머리를 등에 기댄 채 자전거 드라이브를 즐겼다.

 

요즈음 <아버지>라는 단어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짊어지고 가야하는 삶의 무게와 그들의 녹록치 않은 현실에 대해 집중 조명되고 있다.

우리민족 5천년 역사 이래로 최근의 50년이 세계에 견주어서 가장 부유하고 먹고 살만한 시대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의 권위는 상당부분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버지의 모든 것은 심각하게 퇴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그 모든 것에는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권위, 발언권, 경제력, 자존감 등이 포함 된다.

 

50대에 명퇴를 당했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괴로워하는 아버지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물론 이들이 설 땅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포용해 주어야 하는 가정 내에서 조차도 배척받기 일쑤다.

 

일터에서 경쟁하며 속울음을 삼켜야 하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지만, 정작 그들의 노후는 어디에서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최근에는 경제력을 상실한 남편과는 살기 어렵다며 이혼소송을 당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하신 나의 아버지는 문맹이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나에게는 태산과 같다.

유년시절 산처럼 넓은 아버지의 등에 기대어 자전거를 탔을 때의 경외감이, 40년이 흐른 지금도 늘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도 한 집안의 가장이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따금 나에게 반문해 본다. 나는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산처럼 믿음을 주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의 눈과 가슴에 각인된 아버지로서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 땅의 아버지들이 다시 한 번 어깨를 활짝 펴고 당당해 지기를 바란다!

최후의 보루인 가정에서 만큼은 존경받고 사랑을 나누어 주는 존귀한 존재가 되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해 본다.

 

이민근  gjilbo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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