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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척면 유정2리 ‘미륵동’미륵사상으로 무장된 민간신앙 성지(聖地)

도척면(都尺面) 유여(柳餘)마을, 세칭 미륵마을은 미륵신앙으로 현세를 슬기롭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오랜 고향이다.

이 마을사람들에게 있어 미륵신앙은 생의 지표이며, 미륵불은 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신앙 탓인지 이 마을 젊은이들은 전쟁터의 재앙 즉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터에서 아무도 전사의 비운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마을이 미륵마을이란 이름을 부여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륵불에 얽힌 전설은 풍양조씨의 새로운 ‘후손잇기’와 관계한다.

조선조에서 형조판서를 지낸 조만구는 슬하에 아들(조균연)하나를 두어 이조판서까지 오르게 하였는데, 조균영의 아들 조희백(진사)에 이르러 손이 없어 고심하게 된다.

이에 조희백의 부인 벽진 이씨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파보면 미륵불이 나올 것임과 이 미륵불을 정성껏 봉안하면 득남할 것임을 알려주었다.

이에 벽진 이씨가 충실히 신령의 말을 따라 미륵불을 현 위치에 봉안하고 정성을 들여 받들매 이후 조영재라는 아들을 얻게 된다.

이후 이 마을 사람들은 미륵불을 무운을 비는 수호신으로 받들게 되고, 1979년에 이르러 경기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받게 된다.

이 미륵불은 미륵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조영재가 자신의 운명적 탄생을 기리고 미륵신앙을 전수하기 위해 새로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미륵불은 호분(胡粉)이 많아 세부선이 명확치 않으며, 체구에 비해 머리가 유독 크고, 무릎 역시 성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또 옷 주름도 제한되지 않아 섬세함이 떨어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온화한 분위기와 미륵세계를 도래시키려는 지극히 순결한 의지는 미륵마을 사람들이 협동심을 발휘하기에 충분하다.미륵불이 모셔진 바로 앞, 동네 갈림길에는 항상 마르지 않는다는 우물이 하나 있고 그 옆에는 1천5년 동안 이 마을을 지켜온 느티나무가 리보호로 지정된 채 앙상한 모습을 부끄러운 듯 드러내 놓고 있다.

또 그 앞에는 버드나무 한그루가 오랜 억겁을 지켜낸 듯 피곤하게 겨울을 지내고 있다.

혹자는 유정리(柳井里)란 현 지명이 이 우물과 버드나무에서 따오지 않았나 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유여리(柳餘里)의 유(柳)자와 이웃 운정리(雲井里)의 정(井)자를 따서 유정리(柳井里)라 했으며 운정리를 유정1리, 유여리를 유정2리로 각각 행정구획화 했다는 것이 보편적이다.

미륵마을은 예부터 율평(栗平)이라 불리 우리 만큼 밤나무가 많아 숲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 잠업이 광주에서 가장 성행하여 한때 뽕나무밭이 장관을 이루었다 한다.

또 물이 좋아 장수하는 마을로 알려졌으며, 미륵마을의 남다른 단결력이 내일의 새로운 미륵마을을 이끌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해본다.

 

한상준  gjilbo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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