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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과 이성산성 일대의 역사성 연구(3)하남 교산동 건물지를 왜 백제의 왕궁지로 보는가?(2)

◆ 삼국사기에 한산과 숭산(崇山) 주변이 백제 왕도로 기록

◆ 한산은 남한산 숭산은 검단산으로 밝혀짐

                         <왕궁지서 출퇴된 유물, 기와>

금까지 교산동 건물지가 주변 유적과 어떤 연계성이 있으며 건물의 규모 보호시설 등 여러가지 면으로 백제의 왕도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며 본문에서는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백제왕도의 기록과 얼마나 합리성이 있는가에 대한것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만약 삼국사기의 기록과 다르다면 이곳 이외 또 다른 도읍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1] 온조왕 13년 (서기전6년) 7월에 한산 밑으로 나아가 성책을 세워 위례성의 민호(民戶)를 옮기고 9월에 도성과 궁궐을 세웠다.

[2] 온조왕 41년(23) 한수(漢水) 동북쪽의 모든 고을사람으로 15세 이상을 징발하여 위례성을 수축하였다.

[3] 고이왕 9년(242) 서문을 나와서 활 쏘는 것을 관람하였다.

[4] 고이왕26년(371) 고구려의 평양성을 침입하여 고국원왕을 죽이고 돌아와서 서울을 한산으로 옮겼다.

[5] 침류왕2년(385) 2월에 불사(佛寺)를 한산에 창건하였다.

[6] 진사왕7년(391)정월에 궁전을 수리하고 연못을 파고 그 속에 산을 만들고 기이한 금수(禽獸)와 초목을 길렀다.

[7] 아신왕14년(405)3월에 백기(白氣)가 궁성의 서쪽에 일어나는데 필련(匹練)을 펴 놓은 것과 같았다.

[8] 비유왕 21년(447) 5월에 궁성의 남쪽 연못 가운데 불이 보이는데 그 불덩이가 수레바퀴와 같았다.

[9] 개로왕 21년(475) 강변을 따라 제방을 쌓았는데 사성(蛇城)의 동쪽으로부터 숭산(崇山)의 북쪽에 이르렀다.

위의 삼국사기 내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백제 왕도의 도읍지를 한산 아래 정하였다는 [1]번과 한산으로 도읍지를 옮기는 [4]번 사찰을 한산에 창건하는 [5]번으로 한산이 어느 곳이라는 것을 밝힌다면 백제의 첫도읍지와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죽이고 천도한 도읍지를 동시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궁성의 지형은 서문을 나와서 활을 쏠 수 있는 평지가 있다는 [3]번과 궁성의 남쪽에 연못이 있다는 [8]번 과 궁궐 건물에 연못이 있다는 [6]번 그리고 궁성 주변에는 사성과 숭산이 있다는 [9]번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우선 하남으로 도읍지를 옮긴 위치가 한산아래 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한산의 개념이 큰산이라든가 또는 북한산 남한산 등으로 혼란이 되어 정확이 어느 산이라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삼국사기를 편찬할 당시의 한산은 어느 곳인가 이것을 알 수 있다면 백제의 첫 건국지를 찾을수 있다는 것이다.

<왕궁지 성벽>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1994년6월에 약정사(藥井寺)라는 명문 와편을 하남시 항동 고려시대의 사찰지에서 수집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광주(廣州) 불우조(佛宇條)에 약정사재한산(藥井寺在漢山)이라고 기록됨으로서 약정사는 한산에 있는 사찰이라는 것이다.

즉 약정사가 있는 위치가 한산이라는 것이며 약정사에서 가까운 곳에 백제 도읍지가 있는 곳으로 지금의 남한산이 고려 시대의 한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자료에서 남한산 아래 백제가 도읍지를 정하였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알 수 있는 것은 삼국사기 위의 [9]번 자료에서 사성의 동쪽에서 숭산의 북쪽까지 제방을 쌓았다고 기록됨으로서 숭산(崇山)이 어느 산인가를 알게 되면 도성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즉 제방을 쌓은 위치가 중요한 곳으로 수해를 입지 않기 위한 시설로서 도성 주변의 숭배하는 강변에 있는 산이라는 것으로 신성시 하였던 곳이다.

강변에 숭배 할 수 있는 산이라면 검단산 밖에 없으며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검단산이라는 것에는 달리 이의를 제기 할 수 없을 만큼 뚜렷하다는 것이다.

한산이 남한산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남한산과 가까운 한강변 숭배하는 산은 검단산이며 남한산아래 백제의 도읍지는 검단산 북쪽의 강변 제방에 가까운 위치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백제의 도읍지는 남한산과 검단산 사이에 있다는 것이 삼국사기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문헌과 약정사의 사찰지 명문 와편에서 위와 같은 위치를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종섭<백제문화연구 회장/ 신지식인>

 
 

광주신문  gjilbo2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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